‘올해 내게 주시는 말씀’ 카드,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은 2011년 1월에 “뉴스앤죠이”(http://newsnjoy.or.kr)에 기고한 글인데, 현재 뉴스앤죠이에서 볼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여기에 다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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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 하나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아침, 모든 가족들이 한 방에 둘러앉아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방 한 가운데에는 조그만 그릇이 놓여 있고 그 그릇에는 무언가가 적혀 있는 종이를 접은 것들이 놓여 있다.

가족들은 저마다 비장한 표정으로 돌아가면서 종이를 하나씩 나눠 갖는다. 그리고 비장함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종이를 펴 본다.

그 종이는 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것으로, 집안 시조 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적어 놓은 격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집안은 매해 첫날,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할아버지가 남겨 준 격언 카드를 뽑아서 한 해 생활의 지표로 삼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풍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종이를 하나 뽑을 뿐이다. 가족 중 어떤 이는 과연 이런 걸 계속 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놓지는 못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과연 이 종이들에 할아버지가 남기셨다는 격언 전부가 담겼는지도 의아해한다. 몇 조각 되지 않는 종이들의 개수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런 의구심은 커지기만 한다.

 

2. 생각 하나

한국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 어느새부터 등장한 ‘올해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이름의 카드가 있다. 앞에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뒤편에는 성경 구절 하나가 적혀 있다.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것일까?

목회자의 입장이 되서 이 카드의 긍정적 기능을 생각해 봤다. 아마도 목회자는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한 해 동안 좀 더 말씀을 의지하면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시작으로 한 해의 시작점이 되는 1월 1일 0시는 더 없이 좋은 시간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조금 불손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카드를 나눠 주는 목회자 자신의 영향력이 좀 더 강조되는 것을 바랄 수도 있겠다. 사실 긍정적인 기능은 이 이상 더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에 부정적인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이런 말씀 카드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은, 그 말씀 카드들에 적힌 성경 구절은 누군가에 의해서 성경 66권 중에서 선별된 것이라는 것이다. 혹여나 하나님이 실제로 그런 말씀 카드들을 통해서 신자에게 한 해 동안 붙잡고 살아갈 구절을 주신다면, 왜 성경 66권 전체의 구절에서 뽑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선별된 말씀 중에서 뽑는 것일까? 누가 그들(말씀을 골라 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신자를 연결하는 성경 구절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선별된 구절들은 일정한 기준이 있음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1)복이나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이거나 2)더 깊은 헌신을 요구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카드에 적힌 구절을 몇 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삼하 22:20).”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신 25:15).”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구절을 적은 종이가 적혀 있는 함에서 1개를 꺼내서 그것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는 건 100% 당첨을 보장하는 복권과 같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좀 더 성경 신학적인 접근까지 가미한다면 그 카드에 적힌 구절들이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복 주시는 말씀으로 오해되는 불상사도 동반하게 된다.

정말 올 한 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독교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말씀 카드 패키지가 아니라 66권 성경을 앞에 두고 기도 한번 빡세게 하고 손이 가는 대로 펴고 손가락으로 짚어서 그 말씀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의 방식보다 아주 조금 더 오류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신도들에게 한 해 동안 붙잡고 살 특별한 성경 구절을 주시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성경 어디에서 그런 사례를 찾을 수 있는가?

‘올해 나에게 주시는 말씀 카드’, 그것은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 샤머니즘의 냄새가 더 진하게 풍기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한 구절을 찾기보다 말씀 전체를 묵상하고 이해하고 삶으로 살아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신자에게 필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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