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인터뷰 번역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개봉하고 나서 기독교권 내에서는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나는 애시당초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가 아닌 성경 이야기를 차용한 판타지 영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런 논란은 의외였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잡지인 Christianity Today가 아로노프스키 감독과의 인터뷰를 게재한 걸 발견하고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런데 다들 왠 영어자료냐며 원성이 가득….
그래서 내가 번역할 능력은 없지만, 번역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는고로 저녁 시간에 부탁해서 번역본을 넘겨 받아 이곳에 게재한다.

원문링크 :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2014/march-web-only/darren-aronofsky-interview-noah.html?start=1

번역 : 김정훈(나와 동명이인인 학생)
수정 : 김정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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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영화 “노아”에 관련하여 CT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며 프로듀서인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강박적이며 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에 영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레퀴엠”이라든지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상 지명에 빛나는 “블랙스완”이 있습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그 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주제의 영화도 시도했습니다. 유대교신화를 배경으로 한 “Pi”라든지 에덴동산을 형상화한 “The Fountain”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대교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자란 그는 이번에는 신화가 아닌 실제 성경서사를 배경으로 한 “노아”를 제작합니다. 125백만 달러를 들인 이 영화는 성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인 노아 이야기에 원래 없던 특이한 요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기존에 노아와 방주에 동물들 이야기는 스크린에서 코믹한 요소로만 등장 하였지만(예로 “에반 올마이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대홍수를 “최초의 종말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영화 “노아”에서 그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치루어야 하는 정신적인 대가들에 대해 초점을 맞춥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미드라쉬(midrash)문화; 유대인 교사들이 타나크(Tanakh:유대교 경전)의 보다 더 깊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일부분으로 봅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과 공동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아리 헨델(Ari Handel)은 Christianity Today와 영화가 개봉하기 몇 주 전 뉴욕에서 열린 시사회자리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다음은 그들과 2014 성서영화들에 대해 CT 에세이를 출판예정인 Peter Chattaway와의 인터뷰의 편집된 내용입니다.

Chattaway: “당신의 영화가 정의와 자비를 나타내는 것에 감명 받았다.”

Darren Aronofsky(이하 DA): 그것이 저희가 영화를 제작할 때의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아리(아리 핸델, 이하 Ari)와 제가 이번 영화제작에 시작함과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성경에서 노아를 “의로운 사람”이라 칭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럼 의롭다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기에는 수많은 정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많은 신학자들 그리고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뜻을 찾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저희는 끝내 “의로움”이라는 것이 “정의(justice)”와 “자비(mercy)”의 완벽한 균형이란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Ari가 단어를 정의하는데 아주 좋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Ari와 제가 모두 부모임을 생각해서, 만약 당신이 너무 과한 “정의”를 가진 부모라면, 당신은 당신의 자녀를 과한 엄격함으로 망가트릴 것 입다. 또 만약 당신이 과한 “자비”를 가진 부모라면, 자녀를 과한 너그러움으로 망가트릴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노아의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정의(justice)를 원합니다. 하지만 끝에는 무지개와 함께(손녀들에게)자비를 베풉니다. 저희의 흥미를 끈 것은 바로 그 균형입니다.
“노아”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하나님과 소통하려 합니다. 노아는 그가 이해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너무 앞서 갈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두발가인은 몇 번이고 “나도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정상적인 이야기라면 영화에서 악당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노아”에서 악당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으로부터 10대정도 밖에 세대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창조”가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 기억 속에 하나님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가인에게 표(mark)가 주어진 후로부터 하나님이 노아를 부를 때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발가인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외롭게 남겨두었다가 우리가 난장판을 부려놓으니까 이제 돌아와서 우리를 심판하겠다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약간 화가 나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Ray(레이 윈스턴, 두발가인 역)은 자기 역할에 대해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아이인데 주방을 홀랑 불에 태워놓았고 아버지는 나에게 화가 났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항상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Chattaway: 시나리오를 쓰면서, 당연히 성서를 가지고 작업했겠지만, 다른 서적이나 출처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에녹서”라던가요.

Ari: 저희는 많이 읽어댔습니다. 에녹서도, 주빌리(Jubilee:고대 유대기록), 미드라쉬(Torah:토라를 해석하는 문학)를 많이 읽었습니다. 또 여러 전설들과 미드라쉬 전통들에 관해 읽었습니다. 엄청 많은 대립하는 이야기들과 전설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Chattaway: 이런 외경들 중에서 하나님이 노아를 비롯한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을 사실화한 것들이 있습니다.

Ari: 특별히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은 본 기억이 없지만, 어찌됐든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들이거든요. 하지만 확실한 건 노아의 “의로움”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해줬습니다.

DA: 한 구절이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창세기 6:9]

Ari: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나오는 몇 선지자들이나 인물들에 비하면 노아는 의롭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아브라함에 비해서는 말이죠.

DA: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그는 그가 직접 내려가 의인을 찾아 인류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Ari: 아브라함은 “그러지 마십시오, 만약 의인이 50명 있다면요? 만약 의인이 10명이 있다면요?” 이렇게 빌었지만, 노아는 하나님께 “그러지 말아 달라”라고 비는 대신 그냥 방주를 짓습니다. 만약 노아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자비는 어디 간 걸까요? 그에 비하면 아브라함은 자비로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에 대한 탐험을 해왔습니다. 이야기들이 말이 되게 하려 말이죠. 저희는 저희가 최대한 읽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서적을 읽었습니다.

DA: 신학적으로 가도 되나요?

Chattaway: 당연하죠!

DA: 좋습니다. Ari와 저의 호기심을 불러온 것은 노아가 성경에서 네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창조가 있었고, 원죄, 최초의 살인,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최악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하나님이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 원하는 거죠. 저희에게 명확했던 것은 노아는 원죄를 저지른 인간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세 아들이 있었죠. 그는 셋의 자손이었습니다. 그의 조상은 아담과 하와지요. 그래서 노아도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이상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죄악된 인간이 아직 남아있는데 다시 시작할까요? 사람(노아)에게는 아직 죄악을 저지를 가능성이 남아있는데요.

Ari: 특히 노아와 심판된 사람들과, 마지막에 남은 노아의 가족에 대해 다 읽고 나면 바로 뒤에 바벨탑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로 질문이 한 가지 생기죠,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의 맥락에서 무엇이 우리 안에 죄악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이것이 저희가 찾아내려 한 것입니다. 단순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DA: 저희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몇 천 년 동안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맥락이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성경원문에 벗어나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입니다. 미드라쉬 전통에는 성경원문은 원문 그대로 보존하려 합니다. 원문은 있는 그대로이며 진리고 이야기이며 최종권위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에 상상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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